신나는 민원에피소드 - 책임자 나오라고 해(1)

2021. 4. 3. 18:43나는야 민원해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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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느끼는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숨 쉬고 있다.

다양한 모습, 성격을 가진 사람 그리고 각기 다른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들.

 

나는 여전히 민원담당자다.

그래. 매일 누군가에게 욕을 먹고 내가 하지도 않은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사람.

민원업무를 수년째 하면서 남들보다 멘털도 강하다고 자부하며 살고 있지만 간혹 멘털이 쿠크다스처럼 박살 나는 날도 있다.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민원담당자들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달래보고자 에피소드를 풀어본다.

 

왜 사람들은 맨날 높은 사람들만 찾을까?

 

2019년 4월 벚꽃이 흩날리는 어느 날.

나는 여느때와 다르지 않게 요청과 불만을 쏟아내는 고객들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내 선에서 해결가능한 민원들이다 보니 무난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불행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왔다.

 

메신저를 통해 콜센터 상담원의 다급한 SOS가 도착했다.

 

‘대표님 연락처를 요구하는 민원인이 있습니다.’

 

대표님 연락처를 알려주는 멍청한 회사는 당연히 없겠지.

결국 내가 전화해서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그 민원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상당히 젊은 목소리의 남성이었다.

민원인의 배우자가 가게 입구에서 넘어져 치료를 받고 있었고, 그 가게가 가입한 우리 회사의 영업배상책임보험으로 보험처리를 하는 과정 중이었다.

 

우리 회사는 사고조사를 위해 조사자를 파견했는데, 그 조사자와 민원인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는 것이다.

조사자는 가게 앞에서 휴대폰을 보면서 걷던 피해자가 미처 계단의 높이를 생각 못한 채 넘어져

피해자 과실을 약 30%정도 산정했고, 민원인은 과실이 부당하는 주장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가게 앞 계단에는 특별히 문제가 없었는데 피해자 본인의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한 것 같았다. 

그래도 민원담당자로서 민원인에게 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사고를 다시 검토해보겠다고 안내했다.

 

우선 전화를 끊고나서 사고보고서와 CCTV를 확인했는데 순간 확 열이 받았다.

피해자는 가게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을 보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말 그대로 본인이 휴대폰에 집중하느라 계단을 못 보고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것이었다.

이 사람 보상해줘야 합니까?

 

그럼에도 가게주인과 조사자는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하고 배상책임 법리를 적용하여 상당한 금액의 치료비와 위자료를 지급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단 한 푼도 주기 싫었을 텐데 얼마나 선한 사람들인가.

 

사고의 경위를 다 알고 나니 나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고, 다시 민원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의 경위를 설명하며 피해자의 과실은 최소 30%로 잡아야겠다고 안내했다.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민원인은 화를 내면서 대표이사실로 연결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패턴의 민원인이다. 

본인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무조건 높은 사람만 찾는 이런 민원인들이 많은데, 그 끝은 언제나 좋지 못했다는 사실을 본인은 알까?

 

본인의 주장을 전달하면서 일말의 협의라도 할 수 있는 이성을 갖추었다면 그깟 피해자 과실은 조금 조정할 수도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나도 막장이다.

‘대표님 연락처는 알려드릴 수 없고, 실무자인 저와 말씀 나누시죠.’라고 타일러보았지만 당연히 먹힐 리가 없지.

지속적으로 대표님 연락처를 알려주지 못한다고 하자 이제는 대표이사실로 찾아가겠다고 회사 주소를 요구했다. 

찾아온다고 해서 전혀 무서워할 내가 아니었다.

 

‘ㅇㅇ시 ㅇㅇ구 ㅇㅇ로 ㅇㅇ입니다.’라고 주소를 알려주었고, 민원인은 당장 찾아와서 대표님을 독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거기서 나는 딱 한 마디를 날렸다. 

 

뭐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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