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민원에피소드 - 너의 그 제초제(1)

2021. 3. 27. 15:02나는야 민원해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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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숨 쉬고 있다.

다양한 모습, 성격을 가진 사람 그리고 각기 다른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들.

 

나는 민원담당자다.

그래. 매일 누군가에게 욕을 먹고 내가 하지도 않은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사람.

민원업무를 수년째 하면서 남들보다 멘탈도 강하다고 자부하며 살고 있지만 간혹 멘털이 쿠크다스처럼 박살 나는 날도 있다.

 

이 시대에 매일 고생하고 있는 민원담당자(또는 그에 준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들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알려보고자 연재를 시작한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너의 그 제초제’

 

3년전 올해가 끝난다는 아쉬움과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설렘이 공존하는 12월 31일.

퇴근을 약 2시간 남겨놓은 오후 4시쯤이었을까.

유난히 그 날은 사무실 전화벨소리도 울리지 않는 조용한 날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전화 한 통 없네요?’라고 사수에게 말하는 도중 갑자기 콜센터로부터 전화가 왔다.

 

‘과장님. 지금 한 고객님이 본사로 찾아가신다며 주소를 요청했습니다.’

 

아니 퇴근이 코앞인데 갑자기 전화도 아니고 찾아오겠다니?

불안감이 엄습함과 동시에 콜센터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찾아온다고 하는 그 고객은 당일 오전까지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출소자였다.

곧바로 근처에 있는 지점에 찾아가 만기 된 보험의 환급금을 받고자 하였지만 신분증이 없는 관계로 지점에서 환급금을 지급하지 못한다고 안내한 것이다.

소위 눈에 뵈는 게 없었던 고객은 회사 콜센터에 전화해서 온갖 욕이란 욕은 다 퍼부었다고 한다.

 

비상이다!!!

 

연휴 전 퇴근이 임박한 시점에 갑자기 출소자가 찾아온다니???

민원담당자인 나는 우선 고객이 건물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마중 나갔다.

저 멀리서 씩씩대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한 남성이 보였고, 보자마자 나는 저 사람이 그 고객이구나 직감했다.

선제적으로 고객의 이름을 불렀고, 그 고객은 앞뒤 설명도 없이

‘제가요. 오늘 아침에 출소해서 지점에 갔는데 내 돈을 안 준다고 합니다.’

‘나 지금 돈 한 푼도 없어서 안 주면 죽을라고 제초제 들고 왔어요.

 

강적이다. 제초제를 들고 왔다니? 

분명 콜센터 담당자는 그런 얘기 안 했는데?

그 짧은 순간 혼자 오만가지 상상을 다하며 이 사람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고민에 휩싸였다.

 

다음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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